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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second floor


고우(故友) 시인 김춘수를 기리며 05.04.09 22:30
미술관 HIT 2683
(예담출판사에 기고한 전화백의 글)
시인,김춘수선생 을 기리며

붉고도 시린 아침. 한낮의 회청색 은  차가운 납색의 굵은 너울줄기로 이어졌다가 다시 붉고도 시리며  서서히 깊은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통영의 겨울바다.

코발트 불루를  세밀히 말하자면 쪽빛 한술에 청색 잉크를 한방울 떨어뜨리면 일어나는 번짐의 가장자리색 이라고 표현할수 있다. 김시백은 블루를 무척 좋아했다.굳이 20세기 모더니스트들 의 공통된 이론과 표현방식을 들지 않더라도 가능한 이야기다.

나와 또다른 친구들과 김시백은  바다와 연하여 형성된 포구를 지척에두고 성장했고, 사계절이 가져다준 바다의 풍부한 변화는 필자뿐만 아니라 그의 초기문학의 근간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해방직후, 모든 것이 뒤엉켜있던 시절,한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흔했고,  미래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지를 모른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1945년 9월에 몇몇 친구들이 모여 통영문화협회라는것을 만들어 청마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김시백이 총무를 맡아 한글강습회나 야간공민학교의개설,연극공연,미술전람회등 많은 일들을 하면서 아울러 각자의 현실을 깨우치고 다그치는 계기로 삼았다.

김시백은  총무로서의 의무를 너무나 충실히 수행했고  정확했다.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것은 아마도 이무렵일것이다. 당시 몇편의  습작을 청마에게 보여준일이 있는데, 글자 토시 몇개가 잘못된것을 지적하고는 별말이 없었다는 이야기와, 이후에도 자주 보여주고 평을 청하였으나  좋은 시가 어떤것인지 청마자신이 가늠할수 없다며  할말이없다 했다는 후일담도 들은적이있다. 김시백의 초기 시대는 아마도 청마의 영향이 컷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모임은 3년여 지속하다가 자연 소멸 되면서 모두고향을 떠나게 되고. 김시백은 마산으로 떠났다.

50년대초에 나도 마산의 모고등학교에 임용이되어 고향을 잠시 떠나게 되었는데 마땅한 거처가 없어 당분간 시백의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매일 보게 되었다 . 김시백은 릴케, 도스토예프스키,고리키 등의 문학을 즐겨 읽었는데 ,아마도 러시아문학속의 슬라브족의 정서가 우리의 애뜻한 정서와 비슷하다는것을 발견하였을 것이고 아예 짐작할수없었던 유라시아 세계에 대한  신비스러운 동경심도 함께 지니고 있었으리라는 짐작도 해보았다.

또한 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화가와의 교류도 많았고, 나는 물론이고, 마산의 화가들과도 수번의 시화전을 가지면서 20세기회화의 중심인 포비즘과 큐비즘,초현실주의 의 필연적 형성을 해박한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던 전형적인 모드니스트의 모습을 보였다. 
 
신작이 나오면 가끔 나에게 직접 보내주기도 하였는데 포장을 뜯어면 린시드(유화재료의희석기름)에 엉킨 푸른색 물감의 진득한  냄새가 책으로부터 물씬 풍겨나오는 착각을 일으킨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의지에 철저하였던 릴케의 삶이, 우리의 현실에서도 가능한지를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몇 년뒤에는 니콜라이 베르댜예프에 빠져 있고, 예술가로서의  양심이 현실속에서 어떻해야 하는지를 실천하는 화두를, 긴장속에서 담금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이후 바쁜 삶에 익숙해져 지면이나 혹은 통화로서 간간히 안부를 접하게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격려는 아끼지 않았다. 95년부터는 자주 통영을 찾았는데 ,지난 2004년2월의 고향방문이 마지막일 줄은 그도,나도 예견하지 못했다.  

나는 90년이라는 삶에서 정확하게 69년을 철저한 화가로 살았다. 한곳에 천착하다보면 주변의 일들은 관심에 들지않고, 꼭 필요한 일에만 마음을 쓰게 되는데 김시백과 내가60년 가까이  서로의 안부를 자주 전하고 종종 반갑게  만난것은 서로에게 아무런 가식이 필요치 않았던 젊은시절의 10여년이  짙게 기인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춘수 ! 당신이 생전에 좋아했던 최선생의 작품을 보고있소. 그리고 이작품이 당신의 시화집으로 출간된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감상하는 중이오. 이 작품은  메타포(metaphor)가 더욱 강하고, 말련에 추구했던 무의미시(詩)가 유켄트슈틸*의 새로운 변용속에 녹아들어 다시 보헤미안의 세계로 인도 하는듯 하오. 마치, 당신이 떨쳐 버리려했던 릴케가 그림으로 다시 살아나, 현대인의 심성에 바치는 충실한 제물의 모습으로  당신을  향해 미소 짓는듯 하오  ..... 축하드리오 . 그리고, 이런 노구에 몇일밤을 뒤척이며 당신의 기억을 더듬은 것은, 홀로 남은자의 외로움이 그만 하다고, 그렇게,  알아 주시오.

                                       2005년 1월에 통영바다를 바라보며
                                               화가 전 혁 림


*유켄튜스틸- 1895년경에 형성된 조형예술의 한흐름,
(modern style)(Art Nouveau)등으로 불리어진 새로운 회화 양식의 독일적 변용 .
반가운빗소리06.07.09 9:32

두분의 우정이 가슴 절절히 느껴지는 글입니다.
남겨진자의 몫은 그를 추억하는 것 이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전화백님의 연배의 어르신들은 그렇게 보내고 그렇게 새로운 사름들을 만나시면서 더 간절히 간절히 옛사람들이 그리우실 겁니다.
제가 아직 나이 어리지만 그것을 압니다.
" 한세대는 가고 한세대는 오라 땅은 여전히 있으니..."
전도서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전화백님의 그리움이 물씬 가슴깊이 저미며
저의 눈의 눈물이 주루룩 흐르네요.
남은자의 아픔
남은자만이 할 수 있는 여유
남은자만이 할수 있는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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