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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자의 블로그-이것이 아트- 05.04.12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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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미의식을 향한 열정 2004.09.15

평생 경남 통영의 수려한 자연을 벗삼아 우리 고유의 색채와 조형미를 탐구한 전혁림(86) 화백은 이제 그 이름만으로도 한국 미술사의 한 축을 이룬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그의 무르익은 예술세계를 회고해 본다.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에게 칸느의 감독상을 안긴 영화 <취화선>은 장승업이 도자기를 굽는 굴 안으로 들어가며 그 대미를 장식한다. 영화가 그 끝을 향할 무렵 시퍼런 젊은이로부터 우스운 꼴을 당할 만큼 기력이 쇠해진 그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손으로 하얀 자기에 새기던 붓끝은 외려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안겨 준다. 오히려 ‘일획이 만획이요 만획이 일획’이라는 당당함으로, 지붕 위에 올라가 포효하던 오만한 젊음이 뿜어대던 그림에서 결코 느낄 수 없던 ‘사심(私心)없는’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는 평생 변화를 갈구하던 한 예술가를 거장의 경지로 사뿐히 끌어올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01년부터 한국미술계를 지켜 온 원로작가를 선정하여 전시하는 <올해의 작가전>은 이 시대 우리가 기억해야할 거장들이 남아 있음을 일깨우는 소중한 시간이다. ‘예술’이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상과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평생 외길을 걸어온 원로작가에게 기꺼이 헌정하는 전시인 것이다.

 2001년 권옥연에 이어 2002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전혁림 화백(86)은 191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림, 그리고 통영과 함께 한 작가다. 1938년 <부산미술전>에 <신화적 해변>, <월광(月光)> 등을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화단에 들어선 그는 광복 후 통영문화협회 창립 동인(1945)으로 활동하다가, 6.25가 발발하자 부산으로 정착지를 옮겨 그곳에서 국전에 입선하며 화업의 물꼬를 튼다.

전혁림의 그림에선 통영의 바닷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통영은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동쪽에 자리한다. 통영을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강구항에 정박한 선박의 불빛들이 수면에 일렁이는 통영의 야경은 왜 이곳이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지 넌지시 일러 준다. 바로 이곳에서 동양과 서양의 감수성을 응축한 윤이상의 음악이 태어났고, 사랑하는 것이 사랑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유치환의 시가 자라났고, 누군가의 꽃이 되고파 하던 김춘수의 시가 여물었다.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끊임없는 실험정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리는 전혁림의 회고전은 그의 작품 80여 점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특히 그는 그림·부조·오브제 조각 등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다양한 조형세계와 고향 통영 앞바다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색감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대부분 연대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여느 작가의 회고전과 달리 이번 전시는 (초기) 소재, 바다, 정물 그리고 한국의 환상이라는 소주제로 나뉘어 그의 화업을 압축하고 있다.

1953년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하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초창기 시절, 전혁림은 한국의 전통적인 조형미와 단청의 색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색채의 어울림으로 기억된다. 대상의 정체를 얼핏 보여주는 데 그치는 희미한 형체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무엇보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통영의 바닷가를 넘실대던 물고기가 나오기도 하며, 여성미보다는 여성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누드에도 눈길을 돌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약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연이어 그린 <군상>(1973)과 <학과 소년>(1987)은 형체의 변형과 해체를 반복하며, 독일의 표현주의적 기법을 슬쩍 엿보이다가 마치 마티스의 파란색과 율동감 넘치는 몸짓을 보는 것 같은 다양한 형상을 과시한다.  

전혁림은 ‘바다’의 작가다. 회화·목조·입체작업 등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한 그의 바다그림은 평생을 바닷가에서 살아온 자신의 일생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내 그림의 정수는 화면에 보이는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나의 영혼이다”라는 그의 일갈처럼, 그는 바다뿐만 아니라 군조, 들녘 등 자연풍경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용틀임을 대입시킨다. 또한 그리 크지 않은 붓질 아래 서로 다른 색으로 표현된 들판과 새 그리고 저녁노을은 한데 어우러져 화목해 보이며, 이는 대상의 재현에만 몰두하던 다른 작가와 그 격을 달리하는 작가의 고집을 보여준다.  

전혁림은 유독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두었다. 한국적 소재와 그것의 유기적인 배열에 열과 성을 다한 그의 그림은 자칫 서구적 조형어법의 틀 아래 머물 수밖에 없는 정물화의 한계를 가뿐히 넘어선다. 접시와 화병에 풍성하게 담긴 <석류와 국화>(1969)와 <나비있는 화병과 접시>(1969), 서양화가 라울 듀피의 편안함과 경쾌함을 연상시키는 <정물>(1985) 그리고 피카소의 눈으로 본 듯한 다소 뒤틀린 <나비있는 정물>(1987)은 서구의 조형어법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조용히 충고해준다. 나아가 수많은 평면조각이 이어져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스텔라의 작품 같은 입체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물화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한국적 조형어법을 찾아 나선 작가의 화력(畵歷)을 한 눈에 보여준다.  

이 땅에 현대 추상미술이 움틀 무렵 전통 오방색과 색동저고리를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한 그의 추상화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민화·고분벽화·자수·보자기·단청·노리개 등 전통의 사물을 고스란히 추상화시킨 그의 정신이 ‘무기교의 기교’라 일컬어지는 우리네 아름다움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그리고 이는 세련되었지만 단추를 모두 채운 모범생처럼 단정한 서양의 추상화에 비해, 사물을 유기적으로 배열한 후, 동굴 벽화를 연상시키는 ‘원시성’을 가미한 그만의 추상화를 낳게 한 동인이 되었다.  

전혁림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색채’다. 오방색을 주조로 한 채 군데 군데 파스텔톤을 입힌 그의 색채 감각은 ‘색채의 마술사’라는 오마주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는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색’과 ‘면’이 함께 작동하는 <한국의 풍물도>, <한국의 환상>이라 명한 작품에서도 변함 없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2000년대’라는 믿기 어려운 레테르를 붙인 최근 작품에서 그는 붓터치가 배제되고, 간결한 면 처리로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한결 선명해진 색채는 면과 면의 경계를 일러주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속에는 그가 즐겨 찾던 다양한 소재가 그대로 자리를 차지한다. 나아가 이 모든 것이 거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만큼 훌쩍 커버린 그의 작품 속에 여유롭게, 그러나 결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담겨 있다

      화려한 색채 속에 담긴 한국적 전통미

모든 것이 디지털로 물드는 지금, 그가 캔버스에 물감을 적시던 지난 시간은 하나의 허구처럼 들려 온다. 그러나 전혁림의 그림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지난 한 세기가 머문 채 떠날 줄 모른다. 물론 풍경과 정물 등 그저 곱게만 다가오는 그의 그림에서 이데올로기의 과격함도, 설익은 유행도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그의 손끝을 떠나 화폭을 뜨겁게 적시는 화려한 색이 그려내는 대상은 한결같이 우리 조상의 숨결이 밴 우리 것이며, 이 땅에서 지저귀는 새와 피고 지는 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혁림은 얽히고 설킨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섣불리 발설하지 않는다. 색과 형태가 기하하적으로 섞인 그의 추상화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 영원한 예술적 울림을 안겨주며, 역사를 헤쳐온 예술가의 고뇌를 말없이 삭히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길거리를 채우는 여인의 옷차림처럼 변덕스러운 시류에 곁눈질하지 않은 노화가가 거둔 좀처럼 넘기 힘든 성과일 것이다.    

전혁림은 오늘도 통영의 풍광을 벗삼아, 60년 넘은 그의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한다. “내 그림은 통영의 지역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한민족의 미의식이라고 믿는다. 어떻든 내 그림은 내 삶을 통해 걸러진 삶의 또 다른 이름이자 반영물이다.”

| 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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