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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정열 - 조예린(경남일보 칼럼) 06.08.01 16:45
미술관 HIT 1914
경건한 정열 - 조예린(경남일보 칼럼)




  미술관 (2006-07-29 22:20:22)  





경건한 정열 
조예린 (시인)


/ / 2006-07-23 23:15:13  - 경남일보 (경일춘추)

 시인은 ‘시’로 말하고 음악가는 ‘연주’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그것이 마땅한 소통의 형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나는 무지한 사람처럼 노(老)화백 한 분을 번거롭게 해 드린 일이 있다. 서울의 모 계간지에 실을 대담원고를 빌미삼아.........

 장맛비가 주춤한 틈으로 태풍의 소문이 수런거리는 주말 오후, 오랜만에 찾은 통영은 고스란히 빗물에 젖어 있었다. 내가 나고 자라고 그 속에서 껴안고 뒹굴었던 바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들머리 한 쪽을 빼앗기고도 내심은 여전히 푸르게 꿈꾸고 있는지 바라다 뵈는 바다의 살 자락은 포도빛이다. 그 바다가 거기 있고, 그 거리도 거기 있고, 방문지를 찾아가니 ‘아흔 둘 소년’, 망백의 그 어른도 거기 계신다. 하얗게 세어버린 은발 아래로 여전히 소년의 그것으로 빛나는 눈빛. 뵐 때마다 슬금, 미소 짓게 만드는 그 눈빛이다.

 대화를 풀어나가기 위해, 언제가 나는 화백의 아들로부터 전해들은 무서우리만큼 치열한 작업시간 관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하루 몇 시간씩이나 작업하시느냐고 여쭈어보았다. 그 말에 하시는 대답이, “나는 하루 24시간 작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예전처럼 한 자리에서 다섯 시간 씩 앉아있거나 하지는 못하고, 두 시간 앉아서 그리고, 한 시간 앉아서 그리고, 그렇게 하루 종일 작업합니다. 머릿속에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고요.........” 그만 나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고향의 까마아득한 후배 예술인이란 ‘아슬아슬한 후광’을 힘입어 짧게 몇 가지만 여쭙겠노라고 준비해 간 그 ‘질문’이란 것들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노환으로 인한 심장질환으로 약물치료를 받아가며 하루 스물 네 시간, 생존에 필요한 시간 외에는 애오라지 물감과 파라핀 기름 속에 파묻혀 새로운 작품 세계를 탐구하고 계신- 아직도 더 개척해야 할 자신의 작품세계가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청년의 기백. 그것은, ‘경건한 정열’이었다........

 부끄러움을 추스르고, 예술혼으로 충만한 선생님의 ‘에너지’가 선생님의 건강을 지켜서 앞으로도 여전히 안경도 없이, 손 떨림도 없이, 백수를 누리며 작업하실 것을 기대하겠노라고 축원드렸더니 노화백의 빛나는 눈이 흐물, 웃는다.

 “한국 나이로 지금 내가 92세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깡마른 팔뚝의 피부 표면에 살빛이 되어버린 블루의 물감빛을 건너다보는 순간 문득 나는 섬광처럼! 노화백의 ‘행복’을 인식하였다. 죽음 앞에 이르러서도 한 오라기의 회한이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일 터이다. 통영에서 돌아온 이후 노화백의 팔뚝에 물든 푸른색 물감에 대한 기억은, 무슨 전언처럼 지금도 내 가슴을 두런두런 읽고 지나간다




파란하늘 (2006-07-30 00:26:10)  

미술관에 자주 간다면 자주 가는데..화백님 보다는 관장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화백님의 근황도 주로 관장님께 통해 듣지요..

조예린님의 가슴을 읽고 지나가는 기억처럼 제 기억 중간 중간 남는 화백님의 모습이 있는데..
사택 계단 아래 문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바라보시던 장난끼어린 모습과,
얼굴에 손에 옷에 신발에 묻은 물감이 마치 당신의 일부이신듯 그렇게 편안해 하시는 모습..
작품 앞에 앉아 계실 때면 당신의 힘없는 말소리와 발걸음조차 잊게하는 정열이 느껴진다는 것..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건 분명 축복이겠지요. 진심어린 마음으로 화백님의 건강을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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